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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가입

트위터에 가입했다. 아이디는 ksj_0111
근데 뭐 사용법을 알아야지. =.=
너무 어렵다, 어려워.
누가 사용법좀 가르쳐주센.

참고로 이글루스도 너무 어려워서 짜증나서 못하고있다. 없애버리고싶음.

더불어 아이폰도 어렵다. 짜증나서 뽀개버리기 직전이다. 으악.

집단의 책임

주류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류들 중 가장 잘못된 주장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교회의 목사가 교회재산을 빼돌려도, 물을 흐리는 것은 한 마리 미꾸라지일 뿐, 대다수 선량한 목사나 교사를 탓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천만에! 그렇지 않다. 목사 한 사람이 잘못했으면 대다수 목사 뿐 아니라 기독교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해야 기독교 공동체가 책임을 느끼고 자정노력을 한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
한 명이 잘못을 저지르면 전부 싸잡아 비난하기로 부족하고 완전히 판갈이를 해야한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 내부의 감시, 견제장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 한 사람만을 비난한다면 절대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처벌의 수위를 높여도 사고치는 멍청이는 항상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흙탕물이니까 그곳에 미꾸라지가 사는 것이다.

시스템


[투모로우] 며느리 맞으러 가는 시아버지 이야기 영화 감상

라는건 물론 농담이다. 푸훗.
[투모로우]는 개봉때 극장에서 봤다. 요즘 케이블TV에서도 종종 해주는데, 볼 때마다 넋을 빼놓고 보게 된다. 화면에 돈처바른 영화를 좋아라하는 나로서는 마다할 리 없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데다가, 주인공 제이크 질렌홀도 무척 귀엽고, 거기다 이야기로서 영화 자체도 매우 마음에 든다.
(특수효과는 정말 볼만하다. 특히 빌딩 사이로 물이 차오르는 장면을 좋아한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기가 온다는, 왠지모르게 아이러니하면서도 그럴듯한 설정은 본격적인 SF의 냄새를 솔솔 풍기면서 나같은 SF마니아를 끌어당긴다. 그래봐야 결론은 특수효과 블록버스터 가족영화이지만, 그러나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는 그렇게 얄팍하지만은 않다.
주인공 샘이 고립된 공간은 뉴욕 도서관이다. 왜 하필 도서관이었겠는가? 태울 수 있는 책이 있어서? 주변에는 다른 높은 빌딩들이 많았고, 재미를 고려하면 도서관보다는 오히려 쇼핑몰같은 곳이 훨씬 창조적인 이야기 전개를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서관이라는 곳은 인류 지식의 집합체로서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샘 일행과 함께 도서관에 남은 사서는 말한다. '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문자라고 생각해. 비웃어도 좋아.' 그러나 비웃을 수가 없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그가 대신 믿는 것은 인류의 지성과 그 가능성이다. 그가 품에 꼭 끌어안고 있는 구텐베르크 성경은 사서(지식의 관리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한 남자의 신념의 결정체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서관을 탈출하지 않은 것은 주인공인 샘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책을 두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쪽이 맞을 것이다. 게다가 책이란 것은 태우는 데에만 쓸모가 있는것은 아니어서, 패혈증의 증상과 치료방법을 진단하여 로라를 구하는 데에도 한 몫 한다. 결국 사서와 그의 성경은 무사히 구출되는데, 감독은 인류의 문명은 구원받을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듯 하다.
반면 정치와 법은 철저하게 조롱당한다. 미국 대통령은 어리석은 고집쟁이로 그려지고,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은 멕시코 국경을 넘는 미국인들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통해 바람빠진 풍선처럼 처참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도서관에 남아있던 세법 책들은 '불(이 또한 인류 문명의 상징)'을 위해 가차없이 태워진다 - 니체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인류의 지적 수준을 도약시킨 문자와 인류의 위기를 경고한 과학, 약자를 감싸는 휴머니즘의 손을 들어주고, 인간을 인간 위에 군림케 하는 정치와 법을 패배시키는 감독의 혜안이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 다만 주인공의 가족을 위해서 쓸데없이 희생하는 잭 홀 박사의 동료들은 참으로 설득력이 없다. 그럴듯한 이유라도 만들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조연의 목숨값은 그렇게 싼 것이란 말인가?)

[위대한 캐츠비] 쓰레기 독자를 감동시킨 쓰레기 작품 만화 감상

* [만화] 위대한 캣츠비 by Diesel
나는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운두가 자신의 6년에 걸친 폭력을 '첫사랑'이라고 칭하며 아름답고도 쓸쓸하게 회상하는 모습을 보고 이 작품이 쓰레기라는 결정적인 확신을 얻었다. 이 만화의 남성 캐릭터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섹스'다. 그래서 하운두의 강간과 스토킹은 '구구절절한 첫사랑'이 되고, 캣츠비가 페르수와 섹스하면서 사용하는 콘돔은 '사랑을 방해하는 껄끄러운 물건'이 된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은 이상형 선과 만났을 때에도, 캣츠비는 선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엇도 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섹스'만 할 뿐이다. 반면 여성 캐릭터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희생'이다. 페르수의 경우처럼 그것은 자신의 연인에게 자신이 당하는 성폭력과 스토킹을 끝까지 말하지 않는 것이고(왜냐하면 그래야 연인을 여자를 빼앗긴 멍청이로 전락시키지 않을테니까. 그래야 연인과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 사이가 벌어지지 않을테니까. 자신의 '순결하지 못함'이 드러나 연인을 괴롭게 하지 않을테니까), 선의 경우처럼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치다가도 연인이 헤어진 전 애인에게 돌아가겠다면 미련없이 돌아서주는 것이다.
캣츠비가 아기의 기저귀라도 제대로 갈아주었다면 나는 그의 페르수를 향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믿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남의 아이를 임신한 페르수를 받아들인 것은 결코 페르수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마지막까지 패배자'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연인을 친구와 '공유'하면서도 바보같이 6년간이나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수컷 대결의 패배자'의 입장에서, 페르수를 버린다면 결국 그는 연인이 순결하지 않다고 해서 내다버리는 쓰레기같은 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굳게 믿었던 자신의 순결함과 순진함, 지고지순함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 떠밀리듯 남의 아이를 기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물론 탐탁치 않다. 아기가 울든 말든 기저귀도 갈아주기 싫을만큼.
나는 위 글에 달린 덧글에도 공감하는 편이다. [위대한 캐츠비]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찬사를 받았을까? [위대한 캐츠비]가 아름답고 가슴찡한 사랑이야기여서? 그러기엔 캐츠비의 행동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구질구질하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폭력 속에 방치하고도 내 탓이 아니라며 나몰라라한, 가해의 공범자에 가깝다. 사람들이 캐츠비에게 감동하고 찬사를 보낸 이유 중의 하나는, 캐츠비의 행동과 나레이션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위 글의 작성자가 지적한 것처럼, 캣츠비는 철저한 '찌질이'이면서도 그게 자신이 너무나 순진하고 세상이 너무나 타락한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것은 그대로 독자들이 믿고 싶어하는 그것이고, 독자들이 주인공이 되어 말하고자 하는 그것이다. 독자들이 철저한 루저이니 철저한 루저인 주인공에게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연 하는 남성 캐릭터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영화나 만화 속의 등장인물이기도 하고, 놀랍게도 현실속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타인의 인격과 인생, 생각과 감정, 즐거움과 괴로움은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절절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비극적 인물'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상대방을 지옥속으로 던져넣는다. 자신이 소름끼치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커녕, 도리어 자신은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그러나 상대방의 잔인함 때문에 그것을 이루지 못한 가여운 희생양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토록 잔인한 자기연민이, 이토록 소름끼치는 피해자가 또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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