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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위대한 캣츠비 by Diesel
나는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운두가 자신의 6년에 걸친 폭력을 '첫사랑'이라고 칭하며 아름답고도 쓸쓸하게 회상하는 모습을 보고 이 작품이 쓰레기라는 결정적인 확신을 얻었다. 이 만화의 남성 캐릭터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섹스'다. 그래서 하운두의 강간과 스토킹은 '구구절절한 첫사랑'이 되고, 캣츠비가 페르수와 섹스하면서 사용하는 콘돔은 '사랑을 방해하는 껄끄러운 물건'이 된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은 이상형 선과 만났을 때에도, 캣츠비는 선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엇도 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섹스'만 할 뿐이다. 반면 여성 캐릭터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희생'이다. 페르수의 경우처럼 그것은 자신의 연인에게 자신이 당하는 성폭력과 스토킹을 끝까지 말하지 않는 것이고(왜냐하면 그래야 연인을 여자를 빼앗긴 멍청이로 전락시키지 않을테니까. 그래야 연인과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 사이가 벌어지지 않을테니까. 자신의 '순결하지 못함'이 드러나 연인을 괴롭게 하지 않을테니까), 선의 경우처럼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치다가도 연인이 헤어진 전 애인에게 돌아가겠다면 미련없이 돌아서주는 것이다.
캣츠비가 아기의 기저귀라도 제대로 갈아주었다면 나는 그의 페르수를 향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믿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남의 아이를 임신한 페르수를 받아들인 것은 결코 페르수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마지막까지 패배자'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연인을 친구와 '공유'하면서도 바보같이 6년간이나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수컷 대결의 패배자'의 입장에서, 페르수를 버린다면 결국 그는 연인이 순결하지 않다고 해서 내다버리는 쓰레기같은 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굳게 믿었던 자신의 순결함과 순진함, 지고지순함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 떠밀리듯 남의 아이를 기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물론 탐탁치 않다. 아기가 울든 말든 기저귀도 갈아주기 싫을만큼.
나는 위 글에 달린 덧글에도 공감하는 편이다. [위대한 캐츠비]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찬사를 받았을까? [위대한 캐츠비]가 아름답고 가슴찡한 사랑이야기여서? 그러기엔 캐츠비의 행동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구질구질하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폭력 속에 방치하고도 내 탓이 아니라며 나몰라라한, 가해의 공범자에 가깝다. 사람들이 캐츠비에게 감동하고 찬사를 보낸 이유 중의 하나는, 캐츠비의 행동과 나레이션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위 글의 작성자가 지적한 것처럼, 캣츠비는 철저한 '찌질이'이면서도 그게 자신이 너무나 순진하고 세상이 너무나 타락한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것은 그대로 독자들이 믿고 싶어하는 그것이고, 독자들이 주인공이 되어 말하고자 하는 그것이다. 독자들이 철저한 루저이니 철저한 루저인 주인공에게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연 하는 남성 캐릭터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영화나 만화 속의 등장인물이기도 하고, 놀랍게도 현실속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타인의 인격과 인생, 생각과 감정, 즐거움과 괴로움은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절절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비극적 인물'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상대방을 지옥속으로 던져넣는다. 자신이 소름끼치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커녕, 도리어 자신은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그러나 상대방의 잔인함 때문에 그것을 이루지 못한 가여운 희생양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토록 잔인한 자기연민이, 이토록 소름끼치는 피해자가 또 어디에 있을까!